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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잡꾼들의 기함/크루세이드에 대하여

크루세이드에서 PL 대신 포인트를 쓰게 된 이유

오늘은 한국 크루세이드 단톡방 플레이어들 간에 PL 대신 포인트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크루세이드에서는 기본 룰 상으로는 PL을 쓰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크루세이드의 기본 룰은 모든 게임에서 포인트 대신 PL을 쓴다는 것입니다. 아미 구성을 더 간편하게 함으로써 더 쉽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하기위해서죠. 하지만 2020년 9월 즈음에 크루세이드가 나온 뒤로 3개월 정도 PL로 게임을 진행해본 뒤 크루세이더들이 느낀 것은 "도저히 PL로는 안된다"였습니다. 그 이유를 디테일하게 알아보겠습니다.

 

0. 크루세이드와 밸런싱

우선, 크루세이드 가이드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크루세이드라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성장형 내러티브 게임입니다. 전략을 세우고 상대방을 이기는 재미를 느끼는 매치드 게임과는 근본적으로 게임의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그래서 내러티브 게임과 밸런싱이란 단어는 연관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성장을 하고 강해지는 육성 방식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사람과 오래 포스를 키워온 사람과는 당연히 성장 차이 만큼의 밸런스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캠페인을 다시 시작하거나, 포스를 갱신하는 주기적 Periodic 캠페인 방식의 시스템도 아니기 때문에 그 격차를 좁히는 방법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쳐맞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런 밸런스 차이는 신규 유저들이 들어오기 힘든 환경을 낳습니다.

 

이에 지떱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크루세이드 블레싱 시스템입니다. 각자의 성장치를 비교해서, '성장을 덜 한 사람에게 그만큼의 CP를 부여함'로써 조금이나마 밸런스를 보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크루세이드 블레싱 시스템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성장 특성과 크루세이드 렐릭이 같은 정도의 크루세이드 포인트를 높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BS 자체를 하나 높이는 것'과, '사격 시에만 투 힛에 +1을 해주는 것'이 같은 가치를 갖지는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이 게임은 내러티브 게임이고, 그나마 이 정도로 밸런싱 노력을 했다는 것에 대부분 플레이어 분들이 만족하면서 크루세이드를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 이상의 밸런스 차이를 못버티면 다시 매치드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받아들이고 내러티브와 성장 시스템을 즐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지떱은 큰 악수를 두고 맙니다. 바로 이미 밸런싱이 깨져있는 내러티브 게임에서, 추가로 '포인트 대신 PL을 이용하라'라는 룰을 제시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포인트유닛의 몸체 값과 워기어 값을 따로 계산해 내는 굉장히 디테일한 밸런싱 방식입니다. 반면 PL은 유닛의 몸체 값과 워기어 값을 하나로 합쳐서 계산하는 대략적인 밸런싱 방식입니다. 따라서 두 방식 중에 어떤 방식으로 아미를 구성하냐에 따라 엄청나게 큰 밸런스 차이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미 밸런싱을 어느정도 포기해야하는 내러티브 게임 환경에서 포인트 대신 PL을 사용하는 순간, 그 격차는 몇 배로 늘어나버리게 되는 상황이 나오게 됩니다. 이에 크루세이드 레딧이나 내러티브 사이트 대부분에서는 PL를 사용하지 말고, 포인트를 사용할 것! 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크루세이드 단톡방 플레이어들 같은 경우, 처음에는 공식 룰에 따라 PL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밸런스가 무너진 내러티브 상황에서, PL까지 사용하기엔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1. 유닛마다 1PL의 가치가 다르다

첫 번째 문제는, 유닛마다 1PL의 가치가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쉽게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9판 코덱스가 나온 유닛을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데스 가드의 Troop 컬티스트(좌), 메카니쿠스의 Troop 스키타리 레인저(우)

위 두 유닛은 각각 데스 가드와 메카니쿠스의 기간 보병(Troop)인 컬티스트와 스키타리 레인저입니다.

좌측의 컬티스트는 굉장히 싼 포인트로 슬롯을 채우고, 오브젝트를 점령하며, 상대를 방해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호드 유닛입니다. 전투 능력도 허접하고, 옵젝 시큐어 능력도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싼 값에 슬롯을 채우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본 몸체 기준으로 1개 유닛 10 모델에 2PL, 50포인트 짜리 유닛입니다.

 

반면 우측의 스키타리 레인저는 싸면서도 여러 효과를 받아 고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메카니쿠스 아미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유닛입니다. 같은 트룹이지만 옵젝 시큐어 능력도 있고, 받을 수 있는 버프나 스잼이 많아 전투 능력도 훌륭합니다. 이에 대부분의 기계교 아미에서 대량으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기본 몸체 기준으로 1개 유닛 5모델에 2PL, 40포인트 짜리 유닛입니다.

 

기본적으로 물량이 컬티스트 쪽이 많다보니 포인트랑 PL을 놓고 보면 어느정도 비슷해보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메카니쿠스 쪽이 활용도는 훨씬 높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가 비교한 것은, 그저 몸뚱아리 뿐이죠. 실제로 비교해야 하는 것은 워기어의 문제입니다. 포인트 PL의 격차를 만드는 핵심이 워기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워기어를 장착했을 때, 컬티스트(좌)와 스키타리 레인저(우)

문제를 만드는 핵심인 워기어를 모두 장착했을 때의 컬티스트와 스키타리 레인저를 비교하면 문제가 극명해집니다. 둘다 여전히 같은 8PL 유닛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 유닛의 포인트 차이는 250 - 165 = 95포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실제 사용 활용도는 그 이상으로 격차가 나버립니다. 스키타리 레인저는 모타리온 1턴 킬도 노려볼 수 있는 극악한 무장을 갖게 되는 반면, 컬티스트는 아무 스잼도 없고 특수 능력도 없기 때문에 10모델일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이 차이는 게임 사이즈가 커질 수록 더 분명해집니다. 어느 순간 크루세이더들은, 같은 100PL로 게임을 하고 있더라도 누군가는 2200 포인트 규모의 아미이고, 어느 누군가는 1800포인트 규모의 아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불균형한 게임이죠. 여기에 크루세이드 특유의 성장 변수가 추가된다면? 아마 크루세이드를 접는 사람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커질 것 입니다.

 

이처럼 같은 1PL이라 할지라도 어떤 유닛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요동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인트로 게임을 잡는다면, 전 아무리 그래도 컬티스트 30 모델은 쭉 쓸것 같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구요. 하지만 PL이라면, 전 절대 저 컬티스트 유닛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내러티브 적으로 아무리 워드 베어러와 어울린다고 해도 8PL은 용납이 안됩니다. 이 유닛들 말고도 워기어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포인트 차이가 많이나는 유닛들은 많습니다.

 

2. 같은 유닛, 같은 PL 내에서도 격차가 생긴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이즈의 유닛이라도, 워기어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을 수록 포인트는 높아지지만 PL은 전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 9판 코덱스 유닛으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PL의 플레이그 마린, 하지만 210포인트와 320포인트의 차이

이미 9판 코덱스가 나온 데스 가드의 기간 보병 플레이그 마린의 예시입니다. 다른 팩션에서도 데바스테이터 마린 등 구마린처럼 다양한 워기어에 접속 가능한 유닛들도 이 두 번째 항목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두 유닛 모두 몸체의 스펙은 같습니다. 모두 10개 모델이고, 같은 크기를 같고, 같은 운드와 방어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유닛은 4/0/1의 볼터와 플레이그 나이프를 갖고 있을 뿐, 그 외에 어떤 워기어도 갖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유닛은 원거리, 근접 모두 준수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워기어들을 들고있는 만능 유닛입니다. 따라서 포인트 상으로는 110 포인트라는 큰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같은 PL입니다.

 

문제가 보이실 겁니다. 해당 유닛만으로 가득찬 두 아미가 25PL 게임을 진행한다고 하면, 단순 계산으로 200포인트 차이가 나는 아미가 격돌하게 됩니다. 100PL 게임을 한다면? 1680포인트 아미와 2560포인트 아미가 격돌하게 됩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그 문제는 더 커집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더 중요한 아래 3번 항목으로 연결됩니다.

 

3. 그 누구도 볼터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같은 PL이라면, 포인트 값이 높은 유닛과 포인트 값이 낮은 유닛 중에 어떤 유닛이 더 활용도가 높고 강력할까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포인트 값이 높은 유닛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크루세이드 게임 간 PL을 사용하던 3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모델을 만들고 비츠를 붙일 때 '가능한 비싼 워기어를 전부 달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유닛은 어차피 같은 PL 값이니까 어떤 무장으로 싹 도배해주면 최고 효율의 유닛이 된다" 단톡방에서 돌아가던 대화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내러티브 게임인데, 오히려 매치드 게임보다 더 강한 화력을 보여주는 것이 게임의 목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래가 예시입니다.

 

눈물짓는 상처, 콤비 멜타와 체인 피스트를 곁들인

PL을 기반으로 게임을 돌리던 기간 동안, 저는 체인피스트와 콤비 멜타로 무장한 중장갑 터미네이터 분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포인트 기준으로는 210포가 훨씬 넘는 엄청난 고효율 유닛이었습니다. 이게 상식적인 것이었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도 그런 방식으로 유닛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내러티브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워드 베어러 = 메이스 간지 라는 생각으로 워드 베어러를 시작했는데, 그 값어치의 문제 때문에 체인피스트와 콤비 멜타의 맛을 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지막 자존심으로 분대장만 파워 마울을 달아줬습니다.

 

끝내, 많은 이들과의 이야기 끝에 외국 크루세이더들처럼 포인트 제를 택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비로소 저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컨셉의 카오스 터미네이터, 워드 베어러 어노인티드 터미네이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비의 오컬트, 콤비 볼터와 파워 마울을 곁들인

단순히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의 컨셉과 내러티브, 설정을 버리고 자신의 캡틴에게 썬더 해머를 주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이 잘못되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PL과 포인트라는 시스템에 따라' 크게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가?

기본적으로는, 게임은 결국 포인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대부분의 플레이어 분들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뒤로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바로 포인트로 적응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서술하고, 튜토를 진행하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크루세이드 포스를 운영하는 방식 자체는 PL을 유지합니다. 보급제한을 정하는 방식은 여전히 5PL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이 또한 포인트로 바꾸어버리는 일(Ex, 보급 제한 리퀴지션을 쓰면 보급 제한이 100pt만큼 늘어난다던가)이 많던데, 그러면 유닛 워기어를 바꿀 때마다 포인트가 바뀌어 버리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게임은 포인트, 포스는 PL을 최종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이 기준은 물론 단톡방 플레이어 대부분이 이렇게 한다고 결정한 것 뿐이지, 다른 크루세이더 두 분이 게임을 진행할 때 PL을 사용하든, 포인트를 사용하든 저희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왜 공식 룰을 버리고 포인트를 사용하게 되었는가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아무래도 크루세이드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 역사를 모르고 이해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상입니다!

 

막짤은 역시나 크루세이드로... 다음엔 어디로 떠날까?